1952 ~ 1965
제1장
대한민국 최초 민영
탄광의 탄생과 성장
01.
1952년 11월 20일,
대한민국 탄광 신화의 시작
강원탄광 전경
'국가 발전은 광업에서부터', 강원탄광의 꿈이자 대한민국의 꿈
해방의 혼란과 이어진 전쟁의 잿더미 속, 국가 경제를 재건하려는 절박함으로 한국 석탄 산업을 이끌어간 격동의 주체가 있었다. 바로 강원탄광이다. 1952년 강원도 삼척에서 개광한 강원탄광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탄광이자, 국내 최초 수직갱 건설, 민영 탄광 최초 1백만 톤의 생산 실적을 달성한 역사의 터전이다.
석공 총재시절 탄광개발 관련 브리핑하는 정인욱 명예회장
“우리의 살길은 석탄개발에 있다. 일본의 저 활기찬 움직임도 결국은 석탄산업 때문이다.
일본 유수의 재벌기업인 미쓰이, 미쓰비시도 석탄산업으로 시작해 중공업, 제철로 사업영역을 확장하지 않았는가.”
- 故 정인욱 명예회장
모든 자원과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해방 직후의 황무지에서, 유일한 자립 에너지인 석탄의 효율적 개발만이 국가 경제성장의 뿌리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이를 실현한 사람은 故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미 군정청 석탄과장, 대한석탄공사 초대 생산이사 및 총재를 역임하며 석탄 개발을 통해 산업 부흥의 동력을 마련한다는 꿈을 키워갔다. 이 계획은 1952년 화태탄광 광구 개발권 획득이라는 담대한 결단으로 이어졌다. 야성과 집념으로 무장한 강원탄광의 첫걸음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탄광 개발에 대한 열정 하나로 강원도 험준한 산악 지대를 헤치며 탄맥 추적에 나섰다. 열악한 구식 도구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굴착을 멈추지 않은 끝에 화태탄광 5구에서 마침내 희미한 탄선을 발견했다. 이어 하천을 건너 맞닿은 부지에서도 양질의 대형 광맥을 차곡차곡 찾아냈다. 1952년 11월 20일. 이 광맥의 발견은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 탄광이자, 독보적인 생산성을 자랑하는 탄광으로 승승장구할 강원탄광의 공식 개광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강원탄광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석탄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광부들과 함께 채탄 막장으로 들어가는 정인욱 명예회장
기술 혁신과 직원 복지로 이룬 강원탄광의 경이로운 성과
개광 초기 강원탄광은 연평균 53%라는 경이로운 증산 행진을 이어갔다. 그 비결은 기계를 잘 아는 경영자의 혁신에 있었다. 다른 탄광들이 지게와 곡괭이 등 수작업에 의존해 석탄을 생산할 때, 강원탄광은 최신 기계를 동원해 굴진하고 생산된 석탄을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 날랐다. 그 결과대한석탄공사보다 굴진 속도가 7배나 빨랐으며, 이러한 생산성에 힘입어 1959년 12월 16일 민영 탄광 최초로 무연탄 생산 1백만 톤을 달성했다.
기술뿐만 아니라 직원 복지 역시 시대를 앞서갔다. 노임 체납 없이 타 탄광보다 50%나 높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문화주택'을 표방한 최신형 단독주택 사택촌을 신축했다. 이 외에도 광목과 쌀 배급, 자녀 장학금 지급 등 직원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전폭적인 '직원 제일주의' 복지를 실현했다. 늦은 봄이면 보릿고개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줄을 잇던 그 시절 강원탄광의 사례는 일종의 기적이었다.
02.
기술 제일의 신념으로
시대를 앞서간 강원탄광
강원탄광의 광부
'우리 기술, 우리 자본'으로 뚫어낸 국내 최초의 수직갱
지표면의 탄이 고갈되어 가던 1950년대 후반, 석탄산업의 미래를 고심하던 정인욱 명예회장은 지표면 아래 깊은 곳에 묻힌 지하탄에 주목했다. 그리고 1957년, 국내 최초로 지하 깊은 곳을 뚫고 내려가는 수직갱 건설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독일이 무상 차관을 제안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우리 자본과 우리 기술'로 일어서겠다는 그의 신념은 단호했다. 손수 수직갱의 도면을 그리고 기계를 제작해 가며 오직 자체 역량으로 1962년, 국내 최초 지하 530m 깊이의 제1수직갱을 완공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선친께서는 석탄 팔아서 마련한 수십억 원을 수직갱 파는 데 다 투자했습니다.
그 내면에는 '나는 민족자본가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내 돈 가지고 내가 투자한다'는 신념이 있었지요.
그 돈을 수직갱 파는데 쏟아붓지 않고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국내에 있던 시멘트 공장을 다 인수할 정도였습니다.”
-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무모하다 싶을 만큼 담대했던 이 도전은 대한민국 산업기술사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00% 자체 자본으로 완공된 강원탄광의 수직갱은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를 비롯해 함태, 삼척, 동원탄좌 등 다른 민영 탄광들의 표준이 되었고, 대한민국 석탄 매장량을 산출하는 산업 기준마저 바꾸어 놓았다. 강원탄광이 앞장서 대한민국 탄광의 심부화(深部化) 시대를 연 것이다.
이어 제2수직갱(1959년 5월 착공~1963년 4월 완공), 제3수직갱(1973년 1월 착공~1978년 2월 완공)과 그 연장 공사(1985년 착공~1987년 완공)까지, 강원탄광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는 자립정신과 담대한 투자로 완성된 수직갱은, 국가 에너지 안보와 대한민국 근대화의 불꽃을 지켜낸 강원탄광의 훈장이었다.
'국민의 온기'를 위한 기술 혁신, 연탄 대량생산 시대의 개막
1950년대 후반 산업화 정책으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수도권의 땔감 부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영암선 철도가 개통되자, 강원탄광은 이러한 혼란을 기회 삼아 지방에서 생산된 석탄을 서울까지 저렴하고 신속하게 수송하는 대량 유통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의 영세한 연탄 생산 체제로는 폭증하는 도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가올 연탄 대란을 직시한 강원탄광은 단순한 석탄 채굴을 넘어, 고품질 연탄 개발과 대량생산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준비했다.
1961년 11월 서울 망우리, 서강 삼표연탄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강원탄광의 기계 분야(훗날 삼표제작소로 발전) 엔지니어들은 기존 기계를 분해하고 연구한 끝에 하루 1백만 개의 연탄을 생산하는 전자동 고속 윤전기를 자체 개발해냈다. 이와 함께 연탄연구소를 통해 잘 깨지지 않고 화력이 오래가는 고품질 연탄을 완성하며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했다. 연탄의 경도를 과학적으로 조절해 높이 쌓아도 부서지지 않게 함으로써 장거리 대량 수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물류 혁신과 대량생산을 통해 획기적인 원가 절감을 이뤄냈다. 삼표연탄은 서민들에게 질 좋고 값싼 연탄을 공급하며 대한민국 에너지 보급사에 찬란한 이정표를 남겼다.
'삼표(三票)'는 연탄 사업 진출 당시 정인욱 명예회장이 직접 고안한 브랜드이다. 한자 '삼(三)'에 점화력·내구성·연소시간이라는 제품의 강점과 완전함·균형·조화의 철학을 함께 담았다. 이같은 품질 가치는 이후 중공업, 골재, 레미콘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마다 그룹을 대표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1966 ~ 1988
제2장
강원산업그룹 체제 구축과
사업다각화
01.
강원산업주식회사,
석탄을 넘어 종합 기업으로
성수공장 항공사진
강원산업 사업다각화와 삼표의 태동
1952년 설립된 '강원탄광'은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가며 1960년 '주식회사 강원탄광'으로, 연탄 사업과 수송업이 확대된 1966년에는 통합 사명인 '강원산업주식회사'로 거듭나며 외형적 성장을 이루었다.
한편, 정인욱 명예회장은 매장량이 한정된 석탄 산업의 한계, 일본의 화석연료 수요 급감과 가스연료 수요 폭증의 사례를 보며 시대적 흐름을 직시하고 일찍이 사업다각화에 눈을 돌렸다. 탄광의 잉여 인력과 자재를 활용하는 동시에 연탄 사업의 비수기(봄~가을)를 메울 해법을 고민한 끝에, 한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 건설 현장에 공급하는 골재 사업이 탄생했다. 골재는 채취 방식만 다를 뿐 탄광과 유사한 이점이 있었다. 1966년 삼표연탄 수송을 담당하던 삼강운수주식회사를 기반으로 출발한 골재 사업은 훗날 '삼표산업'의 모태가 되었다.
수도권을 건설한 석산·레미콘 네트워크
골재 사업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선 레미콘 사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성수동 골재 채취 기지에 레미콘 기계를 설치하며 시작된 강원산업의 레미콘 사업은 여의도 63빌딩, 잠실 주공5단지, 정부 과천청사, 상공회의소, 무역센터, 김포공항 활주로 등 수도권의 주요 건축물과 국가 시설에 뼈대를 공급했다. 1977년 성수 및 풍납 공장 등록을 시작으로, 1979년 군산공장, 1982년 인천공장, 1983년 안양공장, 1985년 삼표레미콘 반월공장, 1987년 양주공장을 연이어 확보하며 생산 네트워크를 완성해 갔다.
석탄부터 가스까지,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의 도약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주탄종유(主炭從油)와 주유종탄(主油從炭)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절, 강원산업은 종합에너지 기업이라는 명확한 지향점을 고수했다. 수색저유소, 망우주유소 등 석유 사업과 상봉충전소, 구로저장소 등 LPG 사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1980년 삼표종합가스(현 삼표에너지)를 설립했다. 1984년에는 지분 투자를 통해 강남도시가스를 설립해 구로구 일대에 도시가스를 공급했으며, 1987년 국내 최초로 도시가스 연료를 천연가스(LNG)로 전환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이로써 1988년, 강원산업그룹은 건자재와 에너지를 아우르는 총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02.
꺾이지 않는 신념으로 완성한
강원산업의 중공업 대역사(大役事)
강원산업 형강 광고
삼표제작소의 유산과 철강산업 대장정의 기틀
정인욱 명예회장은 석탄 사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숙원을 이룬 후, 부국강병과 국가 산업화의 완성이라는 청년 시절의 꿈을 이룰 마지막 결단으로 철강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탄광과 연탄 사업의 사양화에 따른 강원산업 사업다각화의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했다.
철강산업을 향한 도전의 시작은 강원탄광의 '삼표제작소'였다. 삼표제작소는 원래 강원탄광에 필요한 광차와 레일, 바퀴, 철제도구 등을 생산하는 탄광 산하의 보수 부서였다. 탄광 규모가 확대되면서 기계 제품 생산량이 늘었고, 생산 품목도 단순한 철제 생산품에서 광차 견인용 배터리 전동차, 연탄제조용 고속 윤전기 등 쇳물을 녹여 주물을 제작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삼표제작소는 별개의 독립된 회사가 되었다.
1970년대 정부의 중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강원산업은 주물용 선철 공장 건설을 제안받았다. 삼표제작소를 통한 주물 사업 경험과 연탄 사업으로 축적한 자본력을 인정받아 포항의 공장 부지와 차관까지 배정되었으나, 공장 건설비는 강원산업이 투자를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차관이나 은행 차입금 금리까지 감안하면 주물용 선철의 단가가 국제가격보다 월등히 높아져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강원산업은 정부투자기관인 포항제철이 해당 사업을 맡도록 정부에 과감히 역제안하며 주물용 선철 사업을 내려놓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전기로에서 피어난 종합 제강 메이커의 결실
그러나 국가 기초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정 명예회장의 사명감과 철강에 대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연탄과 골재 사업으로 축적한 자금만으로는 철강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임원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고로 방식의 주물선 공장 대신 전기로를 활용한 주물 공장으로 과감히 방향을 선회했다.
1973년 3월, 강원산업은 포항제철 맞은편 12만 평 부지에 25톤 전기로를 준공하고 주물·주강품 생산에 돌입했다. 그러나 주물·주강품 수요 부족으로 전기로가 멈춰 설 위기에 처하자, 남은 쇳물로 철근을 제조하는 압연공장 건설이라는 결단을 내리며 주강 회사에서 건축 자재용 제강 회사로 다시 한번 사업 성격을 전환했다.
이후 강원산업은 탄광, 연탄, 골재 사업에서 창출된 자금을 철강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거침없는 시설 확장에 나섰다. 1990년대까지 전기로 용량 확대와 더불어 연속주조설비(CCM), H빔 공장 및 중형강 공장 등을 차례로 준공했다. 그 결과 강원산업은 형강, 철강, 특수강 등 다양한 제품 구성을 갖추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제강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폐차 자원화, 시대를 앞서간 자원 순환의 혁신
한편, 원재료인 고철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1981년 한국슈레다산업을 설립한 것은 또 다른 혁신의 시작이었다. 폐차를 제강 원료로 가공해 포항공장에 공급한 이 사업은, 삼표그룹이 환경자원 재활용 시장에 진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고철을 수집하던 재래식 고물상 방식을 벗어나 첨단 파쇄 설비를 갖춤으로써, 대한민국 산업사에서 현대식 폐차장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989 ~ 1999
제3장
기간산업 주역으로의
도약과 시련
01.
건자재 명가를 향한
경영 혁신과 구조 개편
성수공장 전경
경영체제 개편과 41년 석탄 사업의 퇴장
철강, 건자재,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급격히 세를 확장한 강원산업은, 이질적인 업종들을 종합 관리하는 경영 시스템의 고도화가 시급함을 깨달았다. 이에 1988년 강원산업을 모기업으로 7개 주요 사업을 개별 법인으로 독립시키며 경영 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이어 1989년 정인욱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고 정도원 회장의 2세 경영체제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공채 1기 인재들을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배치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향한 단단한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그룹의 모태이자 성장의 젖줄이었던 탄광과 연탄 사업은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신중하게 정리를 단행했다. 연탄 사업은 1986년 6억 7,000만 개 판매로 정점을 찍은 후 도시가스 보급 확대에 밀려 수요가 급감했고, 탄광 역시 임금 상승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에 직면했다. 결국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호응하여 강원탄광은 1993년 3월, 개광 41년 만에 채탄 작업을 공식 종료했다. 자사 원료 수급이 중단된 서강(1992년), 이문(1992년), 망우(1995년) 연탄공장들 역시 차례로 가동을 멈추며, 강원산업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석탄 사업은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한발 앞선 자원 확보와 삼표산업 일원화의 성과
새로운 경영체제의 발족과 맞물려 선대 회장이 남긴 남다른 선구안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1990년대를 앞두고 수도권 1,500여만 명의 상수원인 팔당호의 수질오염 우려로 인해 한강 골재 채취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강원산업은 이러한 환경 변화를 한발 앞서 감지하고 석산 개발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1986년 봉재, 남양 석산개발을 설립한 후, 1989년 일산광업과 남부개발을 연이어 설립하며 대규모 석산 골재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덕분에 강원산업 골재 사업 부문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도권 수요를 완벽히 흡수하며 업계의 독보적인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조직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결단도 과감하게 이어졌다. 1988년 법인 분리 당시 거점에 따라 삼안, 군산, 삼표레미콘으로 갈라졌던 레미콘 사업부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일관된 영업 정책을 펼치는 데 한계를 나타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초중반 시멘트 공급 부족 파동이 닥쳐오자, 경영진은 단기 이익보다 대형 거래처와의 장기적 신뢰 관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93년 한 해 동안 분산되어 있던 레미콘 계열사들을 '삼표산업'으로 전격 흡수 통합했다. 체계적인 일원화 시스템을 구축한 삼표산업은 대형 고객사들과 굳건한 신뢰를 다지며 건설 자재 시장 내 확고한 지위를 다져 나갔다.
02.
중공업 사업 확장의
빛과 그림자
강원산업 포항공장 H빔 생산 전용라인
시대를 앞선 기술력으로 일군 글로벌 네트워크
1970년대 중공업 사업에 진출한 강원산업은 전기로를 시작으로 연속주조, 완제품 압연에 이르는 지속적인 설비 확장을 거쳐 1990년대 국내 최대 전기로 제강 메이커로 우뚝 섰다. 업계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도용 레일과 시트 파일(Sheet Pile)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여 수입에 의존하던 시장을 국산화함은 물론 일본 수출길까지 열었다.
또한 원자력발전소용 특수 철근과 국내 유일의 초대형 H빔 등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군을 대거 확보했다. 압연용 롤, 광산기계, 중기부품 등 중공업 분야에서도 국내 시장을 압도하는 한편, 세계 유수의 기업들에 수출하며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입증해 냈다.
나아가 1988년 일본 강원상사 설립, LA 사무소의 법인 승격, 1993년 홍콩 강원아세아유한공사 설립을 연이어 추진하며 미국과 일본,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공격적 투자 뒤에 밀려온 IMF 외환위기의 그늘
제강 사업에서 최고를 지향하며 단행한 공격적인 설비 확장은 결국 양날의 검이 되었다. 강원산업은 막대한 시설 투자를 충당하고자 1990년 전환사채(200억 원) 발행과 유상증자(109억 원)를 단행한 데 이어, 1991년에는 4,000만 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를 발행했다. 1996년에는 평가차액 2,894억 원에 달하는 자산 재평가를 실시하며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고, 1997년에는 자본금을 652억 원까지 늘리는 등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95년부터 글로벌 철강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데다, 국내 시장마저 공급 과잉으로 돌아서면서 경영 지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한반도를 흔든 IMF 외환위기는 결정타가 되었다. 1997년, 부지 매입과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포항 중형강 공장이 완공되면서 자금난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결국 유동성 고갈에 직면한 강원산업그룹은 1998년 조흥은행과 워크아웃 약정을 체결하고, 강원산업과 삼표산업을 중심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의 터널로 진입하게 되었다.
2000 ~ 2014
제4장
'삼표 시대' 개막과
그룹 체제의 안착
01.
위기를 딛고 일어선
새로운 '삼표 시대'의 선포
삼표 CI
위기 속의 결단과 현장 경영으로 만들어낸 재기의 발판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강원산업그룹은 1998년 7월 워크아웃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진행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철강 부문은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이 인수, 2000년 3월 합병 절차가 완료되었다. 한편, 건자재 부문은 삼표산업으로 흡수·통합되었다. 또한 1999년 8월 강남도시가스 지분을 세아그룹에 넘기며 에너지 사업에서 철수했으며, 기술 경영의 상징이었던 삼표제작소 역시 인천제철에 매각된 후 여러 차례 사명 변경을 거쳐 2009년 최종 청산되었다.
당시 채권단은 삼표산업의 석산 골재 사업장 매각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나 정도원 회장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한 관계자는 "삼표산업만 놓고 보면 사실 처음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준은 아니었다. 겉으로 폼 나는 사업은 아닐지라도 수익성이 튼튼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알짜 사업 기반을 지켜내고자 했던 정도원 회장은 매각 대신 사재 165억 원을 투입해 유상증자를 단행했으며, 임직원들 또한 급여 동결로 고통 분담에 동참했다.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2000년 3월, 정 회장은 성수동 공장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현장 경영에 돌입하며 조직을 빠르게 수습해 나갔다.
새로운 CI 선포로 문을 연 새로운 '삼표 시대'
결단과 고통 분담은 머지않아 결실을 보였다. 2000년 수도권 아파트 건설 붐에 힘입어 삼표산업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당초 예정보다 1년 반이나 앞당긴 2002년 4월 마침내 워크아웃을 전격 졸업했다. 이후 회사는 건자재, 철도, 물류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당시 경영진은 회사의 과거 위상을 회복하고 인재를 모으기 위해 기존 성수동 공장 부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03년 3월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하며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
나아가 삼표는 워크아웃의 상처를 완전히 씻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기 위해 2004년 7월 새 CI 선포식을 개최했다. 새로운 CI 선포는 삼표가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을 회복했음을 대외에 알리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는 중공업을 내려놓고 기초 건자재 중심으로 재편된 삼표의 새로운 정체성을 공식화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기존의 한자 '三' 형태에서 벗어나 영문 'SAMPYO'에 세련된 스카이블루 색상을 적용한 새 CI는 단순한 디자인 개편을 넘어, 새로운 '삼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걸음이었다.
02.
대한민국 대표 건자재 기업의
기술과 품질에 대한 집념
경부고속철도 대구-울산구간 궤도공사
독자적 기술 혁신으로 이룬 철도 궤도 기술 국산화
삼표는 1990년대부터 철도 분기기 시장의 미래를 내다보고 경부고속철도 1단계 사업에 참여하며 철도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당시 철도 분기기는 해외 기술과 부품에 전적으로 의존해 유지보수 및 비상시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에 도입된 오스트리아산 유압식 분기기에서 기능 장애가 발생하자, 고속철도 차량 및 궤도 용품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고속 분기기 분야에서는 삼표레일웨이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국가철도공단과 공동 연구를 진행해 국산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또한 국가철도공단과 공동 연구를 통해 PSTS(Precast Slab Track System)의 신기술 등록과 상용화를 주도하며 국내 철도 궤도 시공 기술을 혁신했다. PSTS는 공장에서 제작한 패널을 현장에서 조립식으로 시공하는 궤도 시스템으로,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가 뛰어났다. 이러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삼표레일웨이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 연속 철도 궤도 시공능력평가 1위를 차지하며 부동의 시장 선두 주자로 발돋움했다.
발전 폐기물의 재탄생 : 편견을 뚫고 구축한 플라이애시 전국망
과감한 도전은 자원 재활용 분야에서도 눈부신 결실을 보였다. 삼표는 1986년 국내 최초로 발전 폐기물로 처리되던 석탄재(플라이애시)를 시멘트 대체재인 친환경 건축 소재로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건설사들의 거부감이 적지 않았으나, 삼표는 지속적인 연구 개발과 실험 데이터 검증으로 신뢰를 쌓아 나갔다.
2001년 당진 플라이애시 공장을 가동하며 독자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한 삼표는 2003년 호남 공장 가동, 2008년 경원소재 인수를 통한 보령 공장 확보로 전국 생산체제를 완성했다. 이로써 연간 210만 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춘 업계 부동의 1위로 도약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해사·골재 사업장 확장과 골재 품질 확립
한편 2001년 신설된 해사사업소 역시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 인천 앞바다 모래 채취 중단 위기 속에서 삼표는 기존 예인선의 크기를 두 배로 확장 개조하고, 선원 급여 체계를 인센티브제로 개편해 월 운항 횟수를 8회에서 15회로 대폭 끌어올렸다. 이러한 과감한 선박 투자와 체질 개선을 통해 바닷모래 채취량과 허가량을 추가로 확보하며 종합 골재 채취 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와 함께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골재 사업장을 충청·경상권까지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2005년 연천 석산(NRC)을 시작으로 2006년 광주, 2007년 동북, 2008년 포천, 2010년 용인, 2013년 서세종(신대원), 2014년 동부산(신대원) 등 사업장을 차례로 구축하며 전국적인 공급망을 완성했다. 나아가 철저한 품질 관리를 바탕으로 2006년 화성 석산이 국내 최초로 골재 한국산업표준(KS) 인증을 받은 이래 전 사업장이 KS 인증을 획득하며, 삼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국가 공인 고품질 골재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
03.
레미콘 공급망 확장과
양적 성장을 넘어선 품질 경영
레미콘 풍납공장 전경
레미콘, 그룹 재건의 버팀목에서 매출 5,000억 원 시대로
그룹 재건기, 레미콘 사업은 삼표의 가장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2000년 주차장법 개정으로 다가구주택 건설 붐이 불면서 전문건설업체의 레미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풍납공장은 넘치는 수요로 건설사들이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경합을 벌일 정도였으며, 자연스럽게 '선 현금, 100% 단가 결제' 원칙이 정착되어 풍부한 현금 유동성이 생겨났다.
삼표는 2001년 서부공장, 2002년 아산공장, 2003년 송도공장을 시작으로 2기 신도시 및 재건축 호황에 발맞추어 신속히 전국으로 공급망을 확장했다. 2005년 당진, 평택, 원주, 2007년 용인, 2010년 오산, 2011년 청원, 연천(남동레미콘), 2013년 동서울(타워레미콘) 공장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증설을 단행했다. 그 결과 2014년 기준 전국 30여 개 거점 공장을 확보하며 레미콘 부문 단일 매출 5,0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전문연구소 설립과 품질경영 체제의 완성
이러한 양적 성장의 바탕에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으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 온 삼표의 '기술 경영' 철학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을 표방한 삼표는 두 곳의 전문 연구소를 통해 기술 개발을 집요하게 추진했다. 1993년 업계 최초로 설립된 삼표기술연구소는 특수 콘크리트 개발을 주도했으며, 2001년 설립된 철도기술연구소는 우수 전문가 영입과 수백 건의 특허 출원을 바탕으로 철도 제품 및 시공 기술 국산화를 이끌었다.
품질 관리를 향한 투자는 더욱 과감하고 치밀했다. 2008년 레미콘품질팀과 골재품질팀을 하나로 통합한 품질경영 체제를 구축하면서 축적된 품질 데이터를 구매 정책에 직접 반영하는 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7개 시멘트사의 제품을 매월 평가하여 KS 기준을 뛰어넘는 자체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을 엄선했다. 이어 2010년에는 화성에 통합품질실험센터를 설립하여 삼표만의 독자적 품질 기준 'SKS(Super KS)'를 완성해 나갔다.
이처럼 고도화된 통합 품질관리 체계는 레미콘 원재료 품질 데이터의 구매 반영, 자동 측정 설비 검증, 시험성적서 발행을 통한 매출 창출, KCL(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주관 콘크리트 압축강도 적절성 평가 위탁 수행 등 여러 방면에서 눈부신 성과로 이어졌다. 건자재 분야의 품질 표준화를 주도한 삼표는 한국품질만족지수 7년 연속 1위에 오르며 시장 내 독보적인 위상을 공고히 했다.
04.
미래 건축 소재를 선도할
독보적 기술 개발
제천 파일공장 전경
한계를 극복한 기술 집념으로 이룬 고강도 PHC 파일 상용화
삼표는 신성장 동력으로 PHC 파일 시장에 주목했다. 건설 산업의 대형화 추세에 발맞추어 대구경 파일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2009년 제천에 국내 최초로 대구경 파일 생산 공장을 건설했다. 이후 일본 토요 아사노(Toyo Asano)사와 기술 제휴를 통해 선진 공법을 도입했으나, 기술 적용 과정에서 파일 균열 등 숱한 시행착오에 부딪혀야 했다. 중구경보다 훨씬 무거운 대구경 파일은 크레인 조종이 까다로웠고, 한국과 일본의 지질 차이로 인해 항타기 운용 방식 또한 달라야 했다. 삼표는 이런 현장 경험을 매뉴얼화하고 반복 실험을 거쳐 최적의 제조 조건을 완성해 냈다. 끊임없는 노력은 곧 결실로 이어졌다. 2011년 포스코건설과 공동 연구를 추진한 끝에, 세계 최초로 초고강도(110MPa 이상) PHC 파일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와 함께 탈현장 건설(OSC)이라는 미래 건설 트렌드에 대응하고자 2011년 동아건설산업 청주 공장을 인수하며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사업에 전격 진출했다. 이어 여주, 상주 PC공장을 성공적으로 가동하며 미래 건축 소재 시장을 선도할 지속 성장의 초석을 다졌다.
친환경 분체 기술이 만든 사업 간 시너지
신사업 확장은 슬래그 분야로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남부 지역과 달리 슬래그시멘트 활용이 활발하지 않았던 중부권 시장의 틈새를 정확히 파악한 삼표는 2012년 당진 슬래그 공장을 준공했다. 기존 플라이애시 사업에 슬래그 사업이 더해지면서 원재료비 부담 없이 고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사업부 간 강력한 시너지가 발휘되며 그룹 재도약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나아가 삼표는 2013년 대림산업과 함께 플라이애시 및 고로슬래그 미분말을 활용한 시멘트 저감형 콘크리트 제조 기술을 공동 개발했으며, 2014년 천안 슬래그 공장을 신설하며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또한 다각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펼친 끝에 친환경 분체 원료를 레미콘에 일정 비율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며 친환경 건축 소재의 선도 기업으로 우뚝 섰다.
독점 시장의 벽을 허문 드라이몰탈 사업 도전
이에 그치지 않고 삼표는 공기 단축과 인건비 절감 효과가 뛰어난 드라이몰탈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1년부터 전문 인재를 영입하며 사업을 준비했으나, 특정 경쟁업체가 시장의 약 80%를 독점하고 있어 사내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을 향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에 힘입어 사업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삼표는 연간 500여 곳에 달하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고객의 목소리를 수집했고, 삼표기술연구소의 끊임없는 테스트를 거쳐 2013년 독자적인 최적 배합비 특허를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4년 11월 연 생산량 50만 톤 규모의 화성 드라이몰탈 공장을 완공하며, 마침내 견고했던 독점 구조를 깨뜨리고 드라이몰탈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5 ~ 2026
제5장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도전과 혁신
01.
삼표시멘트 출범,
건설 기초 소재 수직계열화의 완성
시멘트 삼척공장 전경
동양시멘트 인수, 과감한 투자와 현장 경영으로 이룬 화학적 통합
삼표는 2010년대 들어 수직계열화의 유일한 빈자리였던 시멘트 사업을 편입하고자 인수TFT를 전격 출범했다. 레미콘 2위, 골재 1위, 슬래그파우더 1위의 입지를 다져온 삼표는 그룹의 생산 인프라 및 기술 노하우와 압도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멘트 제조야말로 핵심 미래 가치라 판단했다. 마침 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이던 동양시멘트가 매물로 나오자, 삼표는 시장가의 2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2015년 동양시멘트를 인수했다.
인수 직후 삼표는 동양시멘트의 기존 체제를 존중하면서 수평적이고 유연한 혁신 조직문화를 접목해 나갔다. 특히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삼척 현장에 1년 가까이 상주하며 임직원 간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 앞장섰다. 여기에 폐열발전소 신설, 전용선 구입, 설비 보수 등 과감한 투자가 더해지면서 인수 1년 만인 2016년 영업이익 685억 원, 당기순이익 503억 원을 기록하며 조기 정상화에 성공했다. 조직 간 화학적 결합이 결실을 보이자 2017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사명을 '삼표시멘트'로 변경하며 완전한 일원화를 완성했다.
환경·물류 혁신이 이끈 삼표시멘트의 체질 개선
삼표는 시멘트 공장의 낙후된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2018년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야외 공용화장실마저 호텔급으로 조성하라'는 경영진의 강한 의지에 따라 대기실, 휴게실 등 부대시설을 정규 건물과 최신 편의시설로 전면 리모델링하며 업계의 현장 환경을 혁신했다.
또한 전용선을 13척까지 확충하며 해상 운송 중심의 물류 체제로 재편, 물류 경쟁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단일 공장이 지닌 생산 및 출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러한 체질 개선 노력을 바탕으로 삼표시멘트는 2023년 매출액 기준 업계 3위로 당당히 도약했다.
이로써 삼표그룹은 시멘트, 분체, 골재, 레미콘, PC 등이 이어지는 '건설 기초 소재 수직계열화'의 마지막 퍼즐을 완벽히 맞추었다. 원자재 조달부터 완제품 생산 및 유통에 이르는 강력한 밸류체인을 완성한 삼표는 글로벌 건자재 시장을 향해 나아갈 반석을 놓았다.
02.
기술 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 건축 소재 시장 주도
특수 콘크리트 브랜드 '블루콘' 출시
몰탈 전국 네트워크 구축과 디지털 전환
삼표의 몰탈 사업은 후발주자로 시작했으나, 전략적인 가격 정책과 공격적인 시설 증설을 통해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2015년 화성공장 벌크 라인 증설과 2016년 인천공장 준공에 이어 2018년 김해공장, 2021년 세종공장을 차례로 가동하며 전국 건설 현장 어디나 효율적 공급이 가능한 생산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또한 2017년 화성공장에 업계 최초로 자동 출하시스템을 도입해 출하 대기시간을 50% 단축했으며, 모바일 주문 시스템 도입과 2021년 B2C 플랫폼 '삼표몰탈몰(SAMPYO MORTAR MALL)' 오픈을 통해 몰탈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연간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자 제5공장인 포천 몰탈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업계 선두 주자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다져가고 있다.
건설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고부가가치 신기술, '블루콘'의 탄생
삼표기술연구소와 2015년 출범한 품질관리본부의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결과 건설 현장의 제약 조건을 기술 혁신으로 극복하는 특수 콘크리트 브랜드 '블루콘(BLUECON)'을 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2017년 11월 영하 10℃에도 타설이 가능한 내한(耐寒) 콘크리트 '블루콘 윈터'를 시작으로, 2018년 1월 공정을 앞당기는 조강(早强) 콘크리트 '블루콘 스피드', 4월 균열을 최소화하는 프리미엄 바닥용 콘크리트 '블루콘 플로어', 5월 다짐이 필요 없는 자기충전 콘크리트 '블루콘 셀프', 그리고 2024년 8월 우천 시에도 타설이 가능한 '블루콘 레인OK'를 선보였다. 특히 블루콘 윈터는 국토교통부 신기술, 블루콘 스피드는 행정안전부 신기술로 각각 지정되며 현장 적용 범위와 기술 신뢰도를 대폭 넓혀가고 있다.
더블월 신기술 확보와 대한민국 PC 산업의 표준 제시
한편, 삼표피앤씨는 기존 PC(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건축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2017년 현대건설과 함께 '더블월(Double Wall) 공법'을 공동 개발했다. 지하 외벽 시공 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벽체를 세운 뒤 내부에 레미콘을 타설하는 이 공법은 기존 거푸집 설치 등에 소요되던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거쳐 2021년에는 내진 성능을 강화한 '단부 보강형 PC 더블월 복합화 공법'으로 국토교통부 건설신기술(제920호) 지정을 받았으며, 삼성물산과 공동 개발한 '단열 더블월'은 AAA+ 등급의 열효율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삼표피앤씨는 청주, 포항, 제천, 여주, 상주 등 전국 5개 공장에 총 24만㎥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데이터센터를 위한 PC 공법 연구, 토목PC사업, 공동주택 PC모률러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03.
75년 견고하게 세워온 가치,
100년 디벨로퍼로 피어날 미래
수색 'SP타워' 조감도
ESG 경영 체제 구축과 지속가능한 미래 전략
삼표는 75년 역사의 혁신 정신을 바탕으로 2022년 ESG 경영 체제를 전격 선포했다. 2023년 1월에는 삼표시멘트 이사회 내에 업계 최초로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조기 강도가 뛰어난 특수 시멘트 '블루멘트'의 생산을 확대하는 등 친환경 경영 및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삼표시멘트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ESG기준원 평가에서 업계 최초로 3년 연속 ESG 전 부문 A등급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나아가 그룹 차원에서도 2025년 ESG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 자원순환 사회 구축, 인간존중 문화 정착 등 6대 핵심 전략을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강한 실천 의지를 천명했다.
AI 기술 도입과 제조 공정의 디지털 혁신
스마트 안전관리 및 첨단 기술 도입에도 역량을 집중했다. 안전 최우선 경영을 현장에 정착시키고자 2024년 12월 AI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추진, 인천 레미콘 공장과 당진 슬래그 공장을 테스트베드로 하여 'AI 예측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나아가 2025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에 최종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삼표는 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전통 시멘트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통한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 AI 기반의 청년 일자리 창출, 에너지 절감을 통한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3대 핵심 과제를 설정하며 제조 공정의 디지털 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래형 도시개발을 주도하는 종합 디벨로퍼로의 도약
삼표는 기존 핵심 사업을 단단히 유지하는 한편, 미래형 도시개발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종합 디벨로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환의 첫 번째 신호탄인 수색 프로젝트는 삼표의 신사옥이 될 오피스 건물 'SP Tower'와 상업시설, 공동주택 '힐스테이트 DMC역'을 함께 조성하는 복합개발 사업이다. 삼표는 특수 콘크리트를 비롯한 독보적 기술력을 전 공정에 투입하여 고성능 건설 소재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디벨로퍼 도약을 완성할 핵심은 성수동 레미콘 공장 부지를 개발하는 '삼표 글로벌 랜드마크(SGL)' 프로젝트다. 지난 45년간 서울의 주요 레미콘 생산 거점이었던 이곳이 주거와 업무, 문화, 숙박 기능이 융합된 첨단 복합단지로 탈바꿈한다. 최고 81층 규모의 주거동과 53층 규모의 업무복합동이 들어서는 이 대형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성수는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지닌 핵심업무지구로 부상하며 지역의 위상이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는 초고층 건축물에 필수적인 고강도·고유동 콘크리트 및 압송 기술 등 삼표의 축적된 노하우를 선보일 최적의 장이 될 것이다.
건설 기초 소재 분야에서 축적해 온 압도적인 기술력과 대규모 부동산 개발 역량의 결합은 삼표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건자재 명가에서 종합 디벨로퍼로 거듭날 삼표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완성해 나갈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 그 새로운 지평이 한층 더 기대된다.